이제는 커피를 진하게 마시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다. 물을 50ml 추가해서 마시니 커피가 입 안에서 부드럽게 느껴진다. 적당한 커피가 좋다. 산미가 강조된 커피보다 산미가 덤인 커피가 좋다. 요즘 운전하면서 불교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라디오처럼 틀어 놓는데 ‘무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진한 커피를 좋아한 것도, 산미가 강조된 커피를 좋아한 것도 나였지만 지금은 적당한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그 모든 상태가 ‘나’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나를 어떤 상태로 못박지 않고 유연하게 흐르듯이 살아야 한다. 집착하면 고통이 시작된다.
‘나’는 기분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어떤 직업도 아니다. 나는 무형의 그릇이다. 모든 상태는 그 무형의 그릇에 잠깐 담겨 있을 뿐 영원하지 않다. 오늘 아침에 내 그릇에는 50ml의 물이 추가된 적당한 에티오피아 커피가 담겨 있었다. 그 커피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 좋은 기분도 내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 기분이 사라지더라도 슬퍼할 것 하나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포기하라는 뜻도 아니다.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말라는 거다.
달랑 커피 한잔 마시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커피가 다 식어 버렸다. 얼음 띄워서 마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