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로 그은 듯한 직선과 선명한 초점이 세상의 실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km 짜리 자로 지표면에 선을 긋는다면 그것은 결국 거대한 곡선이 된다. 완벽한 직선은 오직 인간의 관념 속에만 존재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직선이라는 것은 뇌가 만들어낸 근사치일 뿐이다. 우주는 끊임없이 휘어지고 흔들린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 '진짜 실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직선이라는 허구의 틀에 갇히면 그 틈새를 흐르는 유연한 곡선의 부피를 보지 못한다. 그동안 모든 것을 정교하게 통제하며 그 안에서 안도하려 애써왔지만, 억지로 대상을 정지시키거나 규격화하려 할수록 생명의 본질은 메말라 갈 뿐이었다. 통제라는 이름의 갑옷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관념의 벽 너머에 있는 날것의 생동감을 목격하게 된다. 선명함을 걷어낸 자리에 남는 불완전한 궤적들이야말로 세상이 감추고 있는 가장 정직한 모습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흐릿한 잔상과 거친 필획은 정답을 비껴간 것이 아니라, 우주의 불확실성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선언이다. 셔터가 열려 있는 찰나의 시간과 종이 위를 가로지르는 붓끝의 마찰 속에는 인위적으로 꾸며낼 수 없는 생명의 찬란한 실체가 깃들어 있다. 나는 앞으로도 직선이라는 가짜 질서에 반항하며, 박제되지 않은 날것의 궤적을 기록하는 과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진을 찍고
글씨를 쓰고
커피를 내리고
흙을 만지며.
ㅡ2026년 4월의 쌍춘 씀